본문 바로가기
신기 역기

미술 군접화훼도(群蝶花卉圖 ) - 남계우 (1811~1888)

by 신정동 홍프로 2025. 4. 27.

미술 군접화훼도(群蝶花卉圖 ) - 남계우 (1811~1888)

남계우. (1811~1888) / 군접화훼도 대련, 19세기 후반 ,종이에 채색,127.9x28.8cm

(국립중앙박물관) 남계우는 그림에 일가를 이루었는데, 나비만을 즐겨 18세기에 고양이를

잘 그린 변상벽을 변고양이라고 불렀듯이. 남나비라고 불렀다.남계우는 정교한 표현,정확학

관찰을 전제로 한 사생,화려한 장식성으로 이름이 높았고,금욕적이고 절제된 표현에 치우친

19세기 남종사의화의 흐름에서 벗어나 독창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을강조한 점에서 독보적이다.

19세기는 청나라의 그림의 영향을 받아 나비그림이 유행하였고 조희룡,신명연,이교익,백은배,

김석희,이경승 등이 나비를 그렸으나 나비그림만을 집중하여 그린 화가는 남계우뿐이다.

 

 

 

 

 

 

 

 

 

 

 

 

 

 

석당 이유신(石塘 李維新)

본관 청주. 자는 사윤(士潤), 호는 석당(石塘) 조선 후기 화가로 남아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산수화로 물기 머금은 윤필(潤筆)로 다루어진 간결한 형태와 밝고 투명하게

선염된 고운 담채가 돋보이며 조선 말기에 대두되는 이색적 화풍과 상 통 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주요 작품으로 운산도, 양류노주도 등이 있다.조선왕조실록에

1753년(영조 29)종묘의 제사를 지낼 때 궁위령으로서 참여하였고 그 공으로 품계가

승진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또, 조선 후기의 학자 유재건(劉在建)이 쓴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에는 그가 그림을 잘 그렸고 돌을 좋아하는 성품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더불어 어느 해 정초에 신위(申緯)의 집에 세배를 갔다가 그곳에서

돌을 얻고 기뻐하였는데 그때 이미 그가 백발의 노인이었다는설명이 부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