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과 유적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과 유적
앙코르와트는 크메르 제국 의 왕 수리야바르만 2세가 1122년부터 1150년까지 28년에 걸쳐
세웠다. 불교 성지로 알려진 지금과는 달리 사실 앙코르와트는 힌두교 사원인데, 당시 크메르
제국의 국교가 힌두교였기 때문이다. 수리야바르만 2세는 이만한 거대한 사원은 시바 신에게
봉헌하던 전통을 깨고 앙코르와트를 질서의 신 비슈누에게 바쳤다. 비록 수리야바르만 2세는
앙코르와트 완성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앙코르와트는 완공된 이래로 국왕 직속의 핵심
사원이자 크메르 제국의 가장 중요한 사원으로 자리잡았다.하지만 앙코르와트가 완공되고
30년도 되지 않은 1177년, 크메르 제국은 인근의 참족에게 공격을 당해 치명타를 입었다. 이때
크메르 제국의 수도 앙코르도 이때 참족에게 약탈당해서 크메르 제국은 나라가 휘청거려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나마 중흥군주 자야바르만 7세가 다시 제국을 회복하고 수도를 앙코르
톰으로 옮겨 천도하면서 크메르 제국은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자야바르만 7세는
국교를 힌두교에서 불교로 바꿨는데, 그동안 힌두 신들을 그렇게 믿어왔는데도 나라가 망하기
직전까지 갔으니 힌두교 신앙심이 완전히 떨어져버렸던 것. 자야바르만 7세는 국교를 불교로
바꾸면서 앙코르와트에 있던 각종 힌두교 부조와 석상들도 상당수 불상 으로 대체했다.안타
깝게도 중흥군주 자야바르만 7세 이후로 크메르 제국은 끝없이 쇠락했다. 인근의 태국,베트남
등에 치이면서 고대의 영광은 온데간데없고 허구한 날 공격당하는 약소국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앙코르에 세운 각종 사원들과 건축물들도 모조리 잊혔고, 앙코르와트 역시 17세기 말
이래로는 거의 사람이 찾지 않는 폐허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앙코르와트가 워낙 면적이 엄청난
건축물이라 아예 잊히진 않았고, 일본 순례자들이 찾아와 작은 초막을 짓고 살기도 했다.이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의 가톡릭 수도자 안토니오 다 마달레나도 1586년에 이 곳을 찾아와 방명록을
남겼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앙코르와트가 아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