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Lukas Furlan
역사 크로아티아인들이 이 지역에 들어온 것은 7세기였다. 북부 달마치야에서 판노니아까지
진출했던 크로아티아의 부족들은 느슨한 동맹을 이루고 있다가 803년에 샤를마뉴의 종주권을
인정했으며, 곧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그후 크로아티아인들의 로마 가톨릭교에 대한 충성심은
정교회를 믿는 이웃 세르비아 와의 관계에 계속 영향을 끼쳐왔다. 10세기에 크로아티아 왕국이
수립되었고 1091년에 헝가리의 라슬로 1세가 왕국의 통치권을 장악하면서 크로아티아는 8세기
동안 헝가리에 합병되어 있었다. 헝가리와의 합병 기간 동안에도 크로아티아는 자체의 의회인
사보르를 유지했으며, 법률상으로는 독립 왕국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1526년 헝가리가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에 패배하면서 크로아티아의 대부분 지역이 투르크로 넘어가 1699년까지
그들의 통치를 받았다. 나머지 지역은 뚜렷한 통치자 없이 남겨져 있다가 1527년 사보르 의회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페르디난트를 왕으로 선출했다. 오스트리아는 크로아티아와
슬라보니아 지역들을 군사적인 국경지대로 삼았으며, 터키와의 전쟁 때 국경 주민으로 징발돼간
세르비아인들을 식민지화했다. 1809∼13년에 일리리아 지방의 일부로서 나폴레옹의 통치를
받았다. 1867년 이중제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워진 후, 달마치야와 이스트라는
비엔나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는 1849년에 오스트리아의 한 주가
되었다가 1868년에는 헝가리의 자치주이자 이름뿐인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으로
전환되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배한 후 크로아티아는
다른 남슬라브족 영토와 함께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1929년에 유고슬라비아로
개칭)을 이루었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군주들 간의 관계는 결코 원만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중 유고슬라비아가 추축국들에게 점령·분할당하자 1941년 4월 10일 자그레브에서
크로아티아가 독립국가임을 선포했고, 4일 후에 독일과 이탈리아의 승인을 받았다. 이
신생국은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달마치야의 일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포함하고
있었다. 새 국가는 파시스트 테러 조직인 우스타샤의 우두머리 안테 파벨리치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는 극도로 잔인하고 폭력적인 독재정치를 펼쳤다. 파벨리치는 소위 '인종정화'를
내세워 수십 만의 세르비아인, 유대인, 집시, 반파시스트 크로아티아인들을 학살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 공산세력이 이끄는 파르티잔 (유격대원)들이 통치권을 확보한 지역에
지역위원회를 조직했고 그밖의 지역에서는 민족해방평의회를 결성했다. 1945년 파르티잔
들이 자그레브를 점령한 후 이 평의회는 인민정부로 전환되었고, 크로아티아는 인민공화국
으로서 유고슬라비아 에 합병되었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크로아티아는 처음에는 유례없는
발전을 이룩했지만 연방 내에서 자치권을 더 많이 확보하려는 노력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선거를 통해 비공산주의계 정부가 탄생했으며 1991년
6월 25일 독립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자극을 받은 크로아티아 내의
세르비아인들은 반란을 일으켰으며, 세르비아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군의 도움으로
크로아티아 내의 여러 지역을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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