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 고려 태조릉
고려 태조릉
경기도 개풍군에 있는 고려 태조 왕건과 비 신혜왕후 유씨(神惠王后 柳氏)의 묘.
능호는 현릉(顯陵). 송악산 서쪽 기슭 좌청룡·
우백호 지세의 야산 자락에 자리잡았다.
능역 중앙에는 정자각(丁字閣)이, 입구에 홍살문이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비각이다.
현재 홍살문과 비각은 훼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은진미륵(恩津彌勒)
논산 은진면 관촉사에 있는 고려 초기의 미륵보살상.
보물 제218호.
머리 부분이 커서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지 않는다.
높이가 18.2m나 되는 고려시대 최대의 석불입상으로,
앞에 서 있는 사람과 비교하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석불 앞에 보물 제232호인 석등이 보인다.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
공주 공산성(公山城) 쌍수정(雙樹亭)에서 금강을 내려다본 풍경.
인조는 이괄(李适)의 난을 피해 이곳에 잠시 머문 적이 있는데,
쌍수정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영조대에 세워졌다는 정자다.
공주 진남루(鎭南樓)
공산성의 남문. 높은 석축기단을 좌우 대칭형태로 조성한 후,
두 석축기단에 걸쳐 누각을 세워 2층과 같은 효과를 냈다.
충주 충렬사(忠烈祠)
임경업어제비(林慶業御製碑) 충주 충렬사에 배향된
충민공(忠愍公) 임경업 장군을 기리는 정조의 어제비.
임경업은 조선 인조 때의 무장으로
친명반청(親明反淸) 활동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억울하게 죽었다고 하여 고려 무신 최영(崔瑩)과 함께
무속신앙에서 가장 존숭받고 있다.
충주 약사(藥寺)의 약사전과 삼층석탑
약사는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단호사(丹湖寺)의 옛 이름.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선 숙종 때 중건되었다.
약사전 내에는 고려시대 철불좌상(보물 제512호)이 봉안되어 있다.
앞뜰의 3층석탑과 깊게 휜 소나무가 단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충주 관아 비석
조선시대 관아 근처에는 전임 수령을 기리는 비석이 많았다.
대개는 수령들의 치적과 무관하게 만들어지곤 했다고 한다.
사진 전면의 비석에 새겨진 희미한 글귀로 보아 어느
현감의 ‘불망비(不忘碑)’였음을 알 수 있다.
폭포
충주와 제천 사이의 어느 산속에 있는 폭포인 듯한데,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길이 없다.
바위를 끼고 쏟아져내리는 물줄기가 용의 모습을 닮았다.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를 누렸을 법하다.
충주 육각당(六角亭)
연꽃이 만발한 연못 한가운데 있는
육각 정자가 운치를 자아낸다.
현재 육각정과 연못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충주교육청이 들어서 있다.
대구 거리
상점들이 즐비한 대구의 거리.
한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대구 달성공원(達成公園)
달성은 본래 삼국시대의 성곽인데,
1906~07년에 성곽을 해체하고
도로를 만들어 공원으로 사용했다.
일본거류민단이 이곳에 신사(神社)를 세웠다고 하는데,
사진에 보이는 것이 그 신사로 추정된다.
부산 일본인 거리
지게로 짐을 나르는 짐꾼은 한국인이다.
부산항
부산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로 개항장이 되었다.
일제는 1905년 전후 경부선 철도 개통과
관부연락선(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던 배) 취항,
부산항 축항(築港)공사 등 일련의 사업을 통해
부산을 한국침략의 발판으로 삼았다.
사진은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는 아미산에서 내려다 본 부산항.
부산 초량
부산 용두산 아래 초량은 숙종대부터 왜관(倭館)이 있던 곳.
개항 이후 이곳은 일본인 거류지가 되었다
부산항 매립지
부산은 연안의 땅이 몹시 좁았기 때문에 새로운 땅을 만들기 위해
1902년 개펄 매립공사를 시작했다.
매립지에 부산역 부지가 만들어지고 부두지역이
확대되어 세관과 제1부두가 완성됐다.
부산항 잔교(棧橋)
1905년 관부연락선이 취항하자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일본인이 크게 증가했다.
이에 일제는 1906년 항만에 철도잔교를 놓아
통행을 도왔다가 1918년에 철거했다.
사진은 관부연락선에서 내려 잔교를 건너는 일본인들.
부산세관
부산이 무역항이 되면서 관세수입이 증가하자
1882년 해관(海關)이 설치되었다.
부산세관으로 이름이 바뀐 1906년 무렵
일본인들은 세관을 새로 지었다.
사진은 공사에 필요한 목재를 나르는 장면으로 보인다.
부산 일본군수비대
1895년 일본군이 부산에 주둔했지만,
이 무렵 한국군은 본래 있던 군진과 수영마저 폐지되고
진위대(鎭衛隊)도 파견되지 않았다.
일본군수비대는 송현산 북쪽 기슭에 병사를 짓고
주둔하다가 훗날 대신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목포이사청과 우편국
목포는 1897년 개항했다.
1906년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일본영사관이
이사청으로 개편되었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일본 기관들이 들어섰고
일본인 거류지가 형성되었다.
군산 전경
1899년 개항한 군산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보내는 항구였다.
미곡반출의 관문이었던 것.
사진에 한옥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본인 거류지임을 알 수 있다.
목포 시가
바다가 보이는 목포 시가지.
일본인 거류지로 보인다.
함흥 남대문
함흥성의 정문으로 남화문(南華門)이라고도 불린 2층 누각.
왼쪽에 보이는 종각의 범종은 현종 때 주조된 것이라고 한다.
오가는 사람이 많고 상점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함흥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함흥 북문과 성천강
함경도에서 가장 넓은 평야인 함흥평야를
가로지르는 강이 성천강이다.
함흥 북문은 성천강으로 나가는 관문이었을것이다
함흥 만세교(萬歲橋)
성천강을 가로지른 나무다리로, 군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조선 태조가 붙인 이름이라 한다.
1905년 러일전쟁 중에 소실된 것을 일본군이
1908년 다시 세웠으나, 1928년 대홍수로 유실되자
1930년 철근콘크리트로 건설했다.
정월대보름에는 이곳에서 다리밟기 놀이를 했다.
함흥 향교
조선 초기에 현유(賢儒) 배향과 지방민의
교육 및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유생들이 모여 있는 누각이 제월루(霽月樓)다.
대성전과 명륜당 등 여러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함흥의 한국인 마을
함흥 어딘가에 있었을 한국인 마을.
사내들이 마을을 가로지른 내에서 지게로 져온
무를 씻고 있다. 담뱃대를 든 노인,
물건을 이고 가는 아낙, 아이들, 강아지까지
한가한 마을의 하루를 짐작할 수 있다.
함흥 동문 밖 귀주사(歸州寺)
고려 때 창건된 귀주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글을 읽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대웅전 앞에서 일본인 가족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함흥 남문 밖 거리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 한가운데
짐을 실은 소달구지가 서 있다.
분위기로 봐서는 장터인 듯하다.
사진 왼편 병원 간판을 내건 가게 옆으로
더벅머리 청년이 지나간다.
회령 시가지
회령은 함경북도 국경지역으로 조선
후기부터 청국과 무역을 하던 곳이다.
두만강 연안의 이 도시는
탄광 덕분에 빠르게 발전했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의 회령
시가지에 소달구지들이 분주히 오간다.
오른쪽 산 중턱에 성문이 보인다.
전선줄이 하늘을 가른다.
회령 동문 안 거리
회령 동문 어귀의 풍경.
쉬고 있는 소달구지며 한가해 보이는 노인네,
성을 나서는 아낙의 모습이 마냥 평화롭다.
회령우편국
회령에 설치돼 있던 우편국 전경.
회령 현충사비(顯忠祠碑)
회령읍내의 현충사에 있는 비.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8명의 공적을 기려 세운 것으로,
높이 182㎝, 너비 60㎝ 크기의 현무암 석비다.
숙종 때 만들어졌다.
배로 두만강을 건너는 풍경
두만강을 건너면 간도(間島)다.
많은 한국인이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간도지방으로 이주했다.
두만강을 건너는 배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본 관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훈춘(琿春) 시가
훈춘은 중국 지린성(吉林省) 훈춘현의 중심지로,
간도로 이주한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곳이다.
1920년 이른바 ‘훈춘 사건’이 일어나 많은 한국인이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한 가슴 시린 고장이다.
옌지(延吉) 국자가(局子街)
중국 지린성의 옌지에도 한국인이 많이 살았다.
지금은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가 되었다.
국자가는 옌지의 중심지인데,
사진은 청나라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담았다.
안둥현(安東縣)
부두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의 도시로 지금의 단둥(丹東).
평안북도 신의주와는 철교로 연결돼 있다.
한국인들이 만주나 중국으로 나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관문이었다.
사진은 안둥 부두에 정박한 한국 사람들의 목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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