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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성당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성당 명동성당

by 신정동 홍프로 2024. 3. 25.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성당 명동성당

명동성당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다. 건축 양식은 네오 고딕을 따르고 있다.
주보성인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무염시태, 無染始胎)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당의 정식 

명칭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대성당' 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이고, 줄여서 '명동대성당', '명동성당'으로 부른다. 

1898년(광무 2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유적지로 사적 제258호에 지정되어 있다. 

중림동 약현성당, 답동성당, 계산성당, 전동성당, 공세리성당 등과 더불어 구한말에 

지어진 대표적 고딕 양식 성당으로 분류된다.성당이 있는 명동 언덕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 토마스의 집이 있던 곳으로 '명례방'이라 불렸던 곳이다.

 이곳은 한국에서 처음 천주교 전례가 거행된 장소이기도 하다.김범우 토마스는 

자신의 집에서 이승훈 베드로, 정약전 안드레아 등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연구하고 

자체적으로 공소 예식을 드렸다. 포도청 당국이 이를 적발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명문가 자제라서 적당히 훈방 조치했지만, 김범우는 중인 계급이라 고문을 받고 

귀양을 가다가 사망했다. 그 후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해인 1886년부터 

조선에서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고 나서 새로 성당을 짓기 시작한 것이 

이 명동성당이다.건축 당시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조정에서는 "명동성당의 

언덕 아래에 왕실의 어진을 모시는 영희전(永禧殿)이 있어서 풍수상 곤란하다.

라며 반대해서 건축이 지연되었다. 또한 성당을 짓는 실무 기술자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왔는데, 청일전쟁이 발발하자 이 기술자들이 중국으로 귀국해버려서

지연되는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