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위궁재사( 昌寧尉宮齋舍)
부마(駙馬) 요 약:~임금의 사위 또는 공주의 남편을 뜻하는 말 입니다.
~ 글자 풀이 ~ 駙 :~ 곁말 부 馬 :~ 말 마 ~<부마(駙馬)의 유래(由來)>~
진(晉)나라 때 간보(干寶)가 편찬한《수신기(搜神記)》에 나오는 말 입니다.
옛날 중국의 농서(지금의 간쑤성)에 사는 신도탁(辛道度)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그는
학문이 뛰어난 스승을 찾아 옹주(雍州)로 가는 도중 날이 저물자 큰 저택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하녀가 안내한 안방으로 들어가니 밥상이 차려 있었다.식사를 마치자 안주인이
들어와서 자신은 진(秦)나라 민왕(閔王)의 공주로서 조(曹)나라로 시집갔다가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23년 동안 혼자 지냈는데, 오늘 자신을 찾아주었으니 부부의 인연을 맺어 달라고
간청하였다.신도탁은 처음에는 사양하였지만 애절한 간청을 이기지 못하고 며칠 동안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나흘째 되는 아침에 그녀는 더 이상 인연을 맺으면 화(禍)를 당한다고
하면서 헤어져야 한다고 하였다.이별이 아쉬운 나머지 그녀는 정표로 신도탁에게 금 베개를
주었다. 금 베개를 받아 들고 대문을 나서서 뒤를 돌아보니 집은 온데간데 없고 잡초만
무성한 허허벌판에 무덤 하나만 있었다. 이후 신도탁은 금 베개로 음식을 사 먹었는데,
우연히 왕비가 그 금 베개를 발견하고 그를 잡아와 문초하였다.신도탁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왕비는“죽은 지 23년이 지났는데도 산 사람과 부부의 인연을 맺으니 당신
이야말로 진짜 내 사위이다. 내 그대를 부마도위에 임명하겠다 (遂封度爲駙馬都尉)”
라고 하였다.부마(駙馬)는 원래 천자(天子)가 타는 부거(副車:예비수레)를 끄는 말이라는
뜻이며,그 말을 맡아 보는 관리를 부마도위(駙馬都尉)라 한다.부마도위(駙馬都尉)의
봉록이 재상에 버금가자 이후부터는 오직 천자의 사위에게 부여되는 벼슬이 되었다.
따라서 부마도위(駙馬都尉)는, 보통 줄여서 부마(駙馬)라고 하는데, 왕의 사위 또는
공주의 남편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합니다.
창녕 위궁재사(昌寧尉宮齋舍) 2002년 9월 13일 등록 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었다.
안동 김씨 종중 동강공파 소유이고 강북 구청장이 관리 한다.강북구 번동에 있는 묘실이다.
순조의 둘째 딸인 복온공주(福溫公主, 1818~1832)와 부마인(駙馬人) 창녕위(昌寧尉)
김병주(金炳疇, 1819~1853)의 재사(齋舍)이다.복온공주는 순조와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1857)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김병주는 본관이 안동이고,자는 정구(定九)이며,
시호는 효정공(孝定公)이다.1830년(순조 30)에 부마가 되어 창녕위에 봉해졌다.복온공주가
가례 이후 2년도 채 안되어 세상을 떠났는데,자식이 없자 족형인 김병교(金炳喬)의 아들인
김도균(金道均)을 후사로 삼았다.하지만 역시 자식이 없어서 제사는 손자로 승중(承重)한
김석진(金奭鎭, 1843~1910)에 의해서 행해졌다.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도총관(都摠官)을
지냈는데,1907년(고종 44)에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뒤,이곳으로 들어와 거주하였다.그 뒤
1910년에 일제가 주는 남작 작위를 거절하고는 이곳에서 순국자결하였다.
인조 반정공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신경진(申景禛:1575~1643)의 별장이었으며 이후
재실이 되었습니다. 오른쪽의 사랑채는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왼쪽의 재사는
1800년대에 지은 건물이고, 정면의 안채는 8·15광복 후 개축하였다가 6·25전쟁 때
파괴되어 이후 재 건축한 것입니다. 역사적·건축적으로 가치가 높은 건축 물이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번동 93번지에 소재합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높은 장대석 기단으로 감싸고 있는 전통한식 목조가옥이다.
2002년 9월 13일 대한민국의 국가 등록 문화재 입니다.
1832년에 복온공주가 세상을 떠난 뒤 무덤이 주변에 자리하였고,이어서 김병주의 무덤도
위치 하면서 재사가 건립 되었다. 그 뒤 무덤은 용인으로 이장 되었다.김병주의 재사로
건립된 부분을 안채로 삼았고,사랑채는 다른 곳에서 옮겨 세운 것으로 전한다.6·25전쟁
으로 재사와 행랑이 파괴 되었지만,1955년에 다시 지었다.현재의 건물은 재실인 안채,
별채인 사랑채, 대문간채 등이 남서향으로 배치되어 있다.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ㄱ’자형
구조인데,5개의 도리로 지붕 가구를 구성한 모습이다.안채 부엌 남쪽의 대청마루는
이전에 재실로 사용된 공간으로,김석진, 김영한(金甯漢), 김윤동, 김문현 등 4대조의
신위를 봉안하였다.지금의 모습은 원래의 모습과 매우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 말기에 건립된 궁집의 구조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이상 자료수집:~ 네이버 백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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