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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문화제

충청남도 부여군 삼국 시대 백제의 사찰터 부여 정림사지

by 신정동 홍프로 2024. 6. 2.

충청남도 부여군 삼국 시대 백제의 사찰터 부여 정림사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사찰터.1983년 사적로 

지정되었다. 백제 성왕이 538년 봄, 지금의 부여인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도성 안을 중앙 동 · 서 · 남 · 북 등 5부로 구획하고 그 안에 

왕궁과 관청, 사찰 등을 건립할 때 나성으로 에워싸인 사비도성의 중심

지에 정림사가 세워졌다. 정림사와 왕궁의 관계는 중국의 북위(北魏)

낙양성(洛陽城) 내의 황궁과 영녕사(永寧寺)의 관계와 흡사하여 사비도

성의 기본구조가 북위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한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1층 탑신 표면에 당나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전승기념비적인 내용이

새겨져 있어, 정림사는 백제 왕실 또는 국가의 상징적 존재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은 백제인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진 석탑이지만, 초층 하부에 있는 소정방(蘇定方)의

평제기공문(平濟紀功文), 즉 소정방이 백제를 멸한 기념으로 새긴 글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평제탑(平濟塔)’으로 불렸다. 그러나 1942년 일본인

후지사와 가즈오(藤澤一夫)가 절터 발굴조사 중에 발굴한 기와조각에

‘태평팔년무진정림사대장당초(太平八年戊辰定林寺大藏當草)’란 명문이

적혀 있어, 태평 8년인 고려 현종 19년에 정림사로 불리웠음을 알게 되었다.

이후 ‘정림사지’와 ‘정림사지 오층석탑’으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