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읍 단종의 장릉
단종이 청령포 유배지에서 마지막 최후를 보내고 이곳 정릉에 한을 내려놓고 묻혀 있는
곳이다.조선의 왕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보존이 잘 되어 있는데
이곳도 다른 왕궁과 마찬가지로 보존이 잘 되어 있었으며, 이곳은 다른 왕릉과는 달리
단종의 복위를 위하여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4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가 있고,
단종의 시신을 거둔 엄흥도의 정려비,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기적비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왕릉에 사당, 정려비, 기적비 등을 갖춘 곳은 장릉뿐으로,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은 단종의 비애가 느껴지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의 왕릉.. 단종의 능인 장릉..
단종역사관을 둘러봅니다..
정순왕후와 단종의 금보(위) / 단종대왕실록과 고려사절요(아래)
단종(1441~1457)은 10세 때인 1450년 아버지인 문종의 즉위로 왕세자로 책봉되었는데,
문종이 왕이 된 지 2년 3개월 만에 사망하는 바람에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 한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왕이 된다. 즉위한 지 1년 반 만에
계유정난이 일어나 단종은 숙부인 세조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되었다. 그 후 사육신의
복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지금의 강원도 영월 청령원에
유배되었다가,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금성대군(세종의 여섯째 아들, 세조의 동생)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사사되었다.
이 때문에 단종은 노산군에서 다시 서인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면서 사건이 종결되는
듯했으나 세조의 신하들은 벌떼같이 일어나 단종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면
차후에도 사육신, 금성대군과 같은 복위 사건이 계속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금부도사 왕방연은 사약을 가지고 단종이 있는 영월 청령포로 갔다.
단종의 사후 처리도 비참해 야사에 따르면 시신이 청령포 물속에 떠 있는 것을 평소부터
충성심이 강했던 영월호장 엄홍도가 몰래 수습해 장릉 자리에 안장했다고 한다.
그가 장사 지내려 할 때 주위 사람들은 후환이 두렵다며 말렸다. 하지만 그는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해도 나는 달게 받겠다"라며 단종의 시신을 홀로 밤에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엄홍도의 충절은 높이 인정되어 그의 자손에게 벼슬자리는 물론 추후에 공조참판이라는
벼슬도 내려졌다. 이런 예를 근거로 영월 사람들은 영월이 '충절의 고장'이라는
데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다. 또한 장릉은 향토 문화재가 거행되는 유일한 왕릉이다.
가마인 신연..
단종 유배길 : 창덕궁 ~ 광나루 ~ 여주 이포나루 ~ 어수정 ~ 해목산 영아루 ~ 원주 문막 ~ 어음정 ~ 소나기재 ~ 청령포
왕세자의 일정과 교육 및 놀이..
장릉으로 올라갑니다..
단종이 명예를 회복하는 데는 200년이 넘게 걸렸다. 숙종 7년(1681), 숙종은 그를 일단
노산대군으로 추봉 한 뒤 숙종 24년(1698) 정식으로 복위했고, 묘호를 단종으로 종묘에
부묘했으며 능호를 장릉이라 했다. 장릉의 능침은 양지바른 곳에 있어 눈이 와도 쉽게
녹으며 따뜻하다. 특이한 것은 능침을 둘러싼 소나무가 모두 봉분을 항해 절을 하듯
묘하게 틀어졌다는 점이다. 풍수가들은 장릉 터를 갈룡음수형(渴龍飮水形),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이라 한다.
장릉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홍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여각..
무인석인 없는 소박한 왕릉으로 능역이 조성될 당시 노산군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장릉의 상설은 정릉과 경릉의 예에 따라 난간석과 병풍석, 문인석은 있지만 무인석은
생략되었고 세자 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능역이 조성된 숙종 대에는 왕 단종이
아니라 세자 노산군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왕조 최초로 폐위된 임금의
무덤이라 능 지위가 아닌 묘 지위를 받아서 노산군묘라 지어졌다 중종 때 첫 능지
확인 후 숙종 대에 이르러 혼유석과 장명등, 석호, 석양, 망주석 등 석물을
정비했는데 작고 간단하게 만들어진 후릉을 따랐다. 규모는 작지만 원형이 잘
보존되었다는 점에서 세종의 영릉과 더불어 으뜸으로 꼽힌다.
홍살문을 지나 능참봉 거처, 단종비각, 정자각, 수라간, 영천 등이 있고..
영조 대에 제향 공간을 만들며 정자각과 수복방 등을 설치했고, 정조 15년(1791)
왕명으로 장릉 밑에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을 차려놓는 배식단, 장판옥, 배견정, 충신각 등을 설치했다.
홍살문..
홍살문을 지나 가면 나오는 우물인 영천..
능참봉의 거주지..
영조 때 건립된 단종비각..
제향시 제물을 올리는 정자각..
탕미(수라)를 짓는 주방인 수라간..
390년 된 느릅나무 보호수..
정자각 뒤로 장릉이 보입니다..
홍살문, 장자각, 장릉이 보이고..
엄홍도 정여각..
숙종 때 건립한 제물을 준비하는 재실..
박충원의 낙촌비각 / 숙종 때 영월군수이던 낙촌 박충원이 단종의 묘를 찾은 일을
기록한 비석으로 1974년 박충원의 후손들이 조성하였다.
엄홍도기념관을 들러 보았는데 기념관은 터만 있고, 엄홍도가 단종 시산을 들고
가는 '충절의 상'이란 동상만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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